용문산은 대한민국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 중에 하나로 주변에는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산객들을 반겨주는 바위산입니다.
용문산 뿐만 아니라 용문사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어 학생들의 체험학습이나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적격이랍니다.
더군다나 중앙선 전철 개통으로 자가용이 없는 대중교통 이용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지요.
지하철을 타고 용문역에 도착해보니 오늘도 해뜨는 시각에 딱 맞췄네요. 용문역은 옛스러운 멋이 있더군요.
거기다가 역 안에는 양평 문인회 회원들이 시화가 걸려있어 용문사행 버스를 기다리면서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는동안 좋은 시도 감상했네요.
8시 32분 첫 버스를 타고 용문사로 출발합니다. 정확히 45분에 용문사 앞에 도착했는데 어떤 분들은 그곳까지 걸어서도 가더라구요. 오우~~
사전에 지리를 파악해 놓아야 하지만 정상인 가섭봉까지만 다녀올 심산이므로 안내도만으로도 충분히 길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산행을 목적으로 왔으나 저에게는 교과서에서 많이 봐왔던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는 것이 오늘의 가장 큰 기쁨이랍니다.
매표소에서 2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보니 이곳 역시 시화전이 열리고 있더라구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 그런지 시(詩)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옛날에 양평 사람 중에는 과거급제한 사람도 많지 않았을까요?
등산로 왼쪽에는 놀이동산도 있으니 저처럼 등산 목적이 아니라면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기에도 좋을 듯 싶습니다.
공원 주변에는 좋은 글귀들을 많이 새겨놓았는데 천양희 님의 시(詩) - <상실>의 글귀에 이렇게 써 있더군요.
내 인생에 포기는 없다. .........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그저 좋은 글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용문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 이 글귀를 계속 마음에 새기면서 올라가야만 하더라구요. 1시간쯤 올라갔을 때, 누군가가 큰 돌멩이에 매직으로 "포기하지마!" 라고 써 놨을 정도니까 초보자들에겐 힘든 코스라 생각합니다.)
이곳으로 가면 보물 531호인 정지국사 부도와 비(碑)가 나옵니다. 하지만 제가 가는 방향이 아니어서 출렁다리는 건너지 않고 얼마나 출렁거리나 몇 번 다리만 굴려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제 아들이 함께 왔더라면 더 있다가 가자고 졸랐을텐데요. ㅋㅋ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2년(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년 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합니다.
가족들과 나들이를 왔다면 이 곳 용문사까지 거닐고 가기를 추천합니다. 여기까지는 완만한 길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용문사 일주문에는 여의주를 문 두 마리의 용이 버티고 서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그 유명한 용문사 은행나무입니다. 오래된 역사만큼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참 많답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세자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심었다는 이야기,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높이만해도 42미터로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에 가장 높다고 하네요. 당연히 은행나무 중에서는 제일 오래됐구요.
샛노란 은행잎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가을에 왔더라면 더 좋았을걸하는 아쉬움도 좀 들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우리 네 식구가 은행잎 주우러 와야겠어요. 무엇보다 교통이 편하니까 부담이 없습니다.
범종각에는 목어 한 마리가 걸려있고, 커다란 종이 있네요. 부처님 오신날에는 범종각 주변에 노란 은행잎 모양의 소원지가 가득 매어져 있겠지요.
지장전, 관음전, 대웅전이 사찰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늘도 대웅전에는 불공을 드리러 온 불자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왠지 경건한 분위기에 방해가 될까봐 가까이 가기가 꺼려지더군요.
불공을 드리던 분들이 나오고 비어 있을 때 멀리서 줌으로 당겨서 대웅전 내부를 찍어보았습니다.
아침 햇살이 오른쪽에서 비쳐와 더욱 신성해 보였습니다.
어딜가나 기와불사는 있는 법, 읽어보면 대부분이 가족의 평안을 비는 내용이더라구요.
약수가 졸졸졸 흘러내리는 그 아래엔 수많은 동전들,,, 이것 역시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던졌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백원짜리 하나를 퐁당!!
불자들이 왔을 때 불공드릴 때 갈아신을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장에는 발 치수까지 친절하게 써 놓았더라구요. ^v^*
용문사로 오르는 길에는 몇 백살 먹은 동생나무들도 몇 층 건물 높이만큼 솟아있었습니다.
누구 동생이냐구요? 당연히 1000살도 넘은 은행나무 형님의 동생들 아니겠어요. ㅋㅋ
지금은 겨울이라 길섶이 썰렁하지만 꽃이 활짝 필 무렵엔 야생화도 볼 수 있고 산자락을 타고 오르다보면 진달래 군락도 있어서 눈요기 하면서 산행의 피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해토기여서 그런지 얼어있던 땅이 봄 기운에 녹고 있었습니다. 제 앞에 이 길을 지났던 산객들의 발자국이 보입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으로 들어가 볼까요? 그런데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네요.
중간중간에는 작년에 떨어진 고로쇠 이파리와 단풍잎이 보이더라구요.
용문역 앞에서 고로쇠 수액을 팔고 있더니만 이 곳에 고로쇠 나무가 많은가봅니다.
계속되는 급경사에 숨이 헐떡거리는 것은 물론이요 다리도 후들거리네요.
저만 그런지 알았는데 군데군데 쉬고 있는 산객들이 꽤 있는 걸로 봐서 힘들긴 하나봐요.
돌로 된 산(화강암)이라 그런지 중간 지점부터는 멋드러진 바위들이 종종 보입니다. 잠시 쉬면서 기념사진 찍기에 제격이네요.
저는 오늘처럼 겨울날이 아닌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을 생각하며 올랐답니다.
그랬더니 조금은 위안이 되네요. 산세가 험한만큼 희귀한 야생화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정상 부근에서 저처럼 디카를 들고 다니면서 카페에 산행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분을 만났습니다. 서로 사진 한 장씩 찍어주며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는데 우연히도 저랑 같은 용인(龍仁) 사람이었습니다.
용인(龍仁) 사람들이 용문산(龍門山)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동행하면서 말벗이나 하자며 함께 올랐지요.
인터넷에서 '산바람'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이셨는데 그 분의 사모님 전화를 받더니만 "지금 애인하고 용문산 올라가고 있는데 왜 데이트 방해하는거야? 잠깐만 애인 바꿔줄게." 하면서 대뜸 저한테 휴대전화를 넘기셨습니다.
어찌할 줄 몰라 인사만 드리고 끊었는데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ㅋㅋㅋ 정말 재밌는 분이셨습니다.
드디어 용문산 정상인 가섭봉에 도착했습니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이 모두 사라지더군요.
산바람님의 말씀으로는 보안상의 문제로 예전에는 산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2007년에 군부대와 협의하여 40년만에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를 개방한 것이라고 합니다.
500미터 남짓한 산들만 다니다가 오랜만에 천 미터 넘는 곳에 올라봅니다.
용문산은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에 이어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하네요.
용문산의 마스코트인 은행나무를 형상화한 멋진 조각물이 정상에 오른 기쁨을 배가시켜 줍니다.
이렇게 확 트인 조망을 갖고 있는 용문산 정상이지만, 한국전쟁 당시에는 중공군과의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라는데...
주변에 펼쳐진 수많은 봉우리들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나라는 복 받은 땅이란 생각을 하게됩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힘을 주는 산(山)이 많으니까요.
이 분이 바로 산바람님입니다. 혼자서 산행을 다니는 것이 저랑 비슷한 분입니다.
정상까지만 갔다오겠다는 계획을 바꿔 백운봉이라는 또다른 봉우리까지 가 보았습니다.
저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무리한 산행이었겠지만 베테랑을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까 오늘은 운이 아주 좋네요.
하지만 백운봉까지 가는 길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넘으면 또 고개, 다 왔다 싶으면 또 봉우리... 그래도 이 분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산타기에 불과했을 겁니다. 백운봉은 알지도 못했을 거구요.
백운봉에 도착하니 백두산에서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겨져다 놓은 <통일암>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전망대에서는 양평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안내 지도를 보며 지형을 하나하나 맞추어 보았습니다.
다음에 가볼 곳도 물색을 하면서요. 3월 17일~18일이 양평 고로쇠 축제가 펼쳐진다고 했으니 또 찾아볼 구실이 생겼네요.
백운봉에서 새수골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약수터, 백운봉까지 허겁지겁 올라온 중학생들한테 물병을 주고 약간 목이 말랐는데
다행히도 약수터가 있네요. '적합'판정 받은 걸루요. 백년 약수터 밑에 있어서 약수사인가? 절 이름이 약수사라고 하네요.
웬만하면 경내에 들어가 보려고 했으나 몇 시간동안 계속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또, 양평역까지 걸어가기로 했기에 사진 한 장만 찍고 쭈욱~ 걸어내려 왔습니다.
양평 소방서를 지나 양평역에 도착!! 초행길이었으나 산바람님을 만나 신바람나게 산행을 마쳤습니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용문산에서 천년이 넘도록 이 산을 지켜온 은행나무도 만나고, 좋은 벗을 만나 산행을 할 수 있어서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
글, 사진 김상선 (블로그기자단 싹수)
용문산 뿐만 아니라 용문사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있어 학생들의 체험학습이나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적격이랍니다.
더군다나 중앙선 전철 개통으로 자가용이 없는 대중교통 이용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지요.
지하철을 타고 용문역에 도착해보니 오늘도 해뜨는 시각에 딱 맞췄네요. 용문역은 옛스러운 멋이 있더군요.
거기다가 역 안에는 양평 문인회 회원들이 시화가 걸려있어 용문사행 버스를 기다리면서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는동안 좋은 시도 감상했네요.
8시 32분 첫 버스를 타고 용문사로 출발합니다. 정확히 45분에 용문사 앞에 도착했는데 어떤 분들은 그곳까지 걸어서도 가더라구요. 오우~~
사전에 지리를 파악해 놓아야 하지만 정상인 가섭봉까지만 다녀올 심산이므로 안내도만으로도 충분히 길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산행을 목적으로 왔으나 저에게는 교과서에서 많이 봐왔던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는 것이 오늘의 가장 큰 기쁨이랍니다.
매표소에서 2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보니 이곳 역시 시화전이 열리고 있더라구요.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 그런지 시(詩)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옛날에 양평 사람 중에는 과거급제한 사람도 많지 않았을까요?
등산로 왼쪽에는 놀이동산도 있으니 저처럼 등산 목적이 아니라면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기에도 좋을 듯 싶습니다.
공원 주변에는 좋은 글귀들을 많이 새겨놓았는데 천양희 님의 시(詩) - <상실>의 글귀에 이렇게 써 있더군요.
내 인생에 포기는 없다. .........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그저 좋은 글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용문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 이 글귀를 계속 마음에 새기면서 올라가야만 하더라구요. 1시간쯤 올라갔을 때, 누군가가 큰 돌멩이에 매직으로 "포기하지마!" 라고 써 놨을 정도니까 초보자들에겐 힘든 코스라 생각합니다.)
이곳으로 가면 보물 531호인 정지국사 부도와 비(碑)가 나옵니다. 하지만 제가 가는 방향이 아니어서 출렁다리는 건너지 않고 얼마나 출렁거리나 몇 번 다리만 굴려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제 아들이 함께 왔더라면 더 있다가 가자고 졸랐을텐데요. ㅋㅋ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2년(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년 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합니다.
가족들과 나들이를 왔다면 이 곳 용문사까지 거닐고 가기를 추천합니다. 여기까지는 완만한 길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용문사 일주문에는 여의주를 문 두 마리의 용이 버티고 서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그 유명한 용문사 은행나무입니다. 오래된 역사만큼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참 많답니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세자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심었다는 이야기,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높이만해도 42미터로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에 가장 높다고 하네요. 당연히 은행나무 중에서는 제일 오래됐구요.
샛노란 은행잎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가을에 왔더라면 더 좋았을걸하는 아쉬움도 좀 들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우리 네 식구가 은행잎 주우러 와야겠어요. 무엇보다 교통이 편하니까 부담이 없습니다.
범종각에는 목어 한 마리가 걸려있고, 커다란 종이 있네요. 부처님 오신날에는 범종각 주변에 노란 은행잎 모양의 소원지가 가득 매어져 있겠지요.
지장전, 관음전, 대웅전이 사찰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늘도 대웅전에는 불공을 드리러 온 불자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왠지 경건한 분위기에 방해가 될까봐 가까이 가기가 꺼려지더군요.
불공을 드리던 분들이 나오고 비어 있을 때 멀리서 줌으로 당겨서 대웅전 내부를 찍어보았습니다.
아침 햇살이 오른쪽에서 비쳐와 더욱 신성해 보였습니다.
어딜가나 기와불사는 있는 법, 읽어보면 대부분이 가족의 평안을 비는 내용이더라구요.
약수가 졸졸졸 흘러내리는 그 아래엔 수많은 동전들,,, 이것 역시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던졌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백원짜리 하나를 퐁당!!
불자들이 왔을 때 불공드릴 때 갈아신을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장에는 발 치수까지 친절하게 써 놓았더라구요. ^v^*
용문사로 오르는 길에는 몇 백살 먹은 동생나무들도 몇 층 건물 높이만큼 솟아있었습니다.
누구 동생이냐구요? 당연히 1000살도 넘은 은행나무 형님의 동생들 아니겠어요. ㅋㅋ
지금은 겨울이라 길섶이 썰렁하지만 꽃이 활짝 필 무렵엔 야생화도 볼 수 있고 산자락을 타고 오르다보면 진달래 군락도 있어서 눈요기 하면서 산행의 피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해토기여서 그런지 얼어있던 땅이 봄 기운에 녹고 있었습니다. 제 앞에 이 길을 지났던 산객들의 발자국이 보입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으로 들어가 볼까요? 그런데 시작부터가 만만치 않네요.
중간중간에는 작년에 떨어진 고로쇠 이파리와 단풍잎이 보이더라구요.
용문역 앞에서 고로쇠 수액을 팔고 있더니만 이 곳에 고로쇠 나무가 많은가봅니다.
계속되는 급경사에 숨이 헐떡거리는 것은 물론이요 다리도 후들거리네요.
저만 그런지 알았는데 군데군데 쉬고 있는 산객들이 꽤 있는 걸로 봐서 힘들긴 하나봐요.
돌로 된 산(화강암)이라 그런지 중간 지점부터는 멋드러진 바위들이 종종 보입니다. 잠시 쉬면서 기념사진 찍기에 제격이네요.
저는 오늘처럼 겨울날이 아닌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을 생각하며 올랐답니다.
그랬더니 조금은 위안이 되네요. 산세가 험한만큼 희귀한 야생화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정상 부근에서 저처럼 디카를 들고 다니면서 카페에 산행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분을 만났습니다. 서로 사진 한 장씩 찍어주며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는데 우연히도 저랑 같은 용인(龍仁) 사람이었습니다.
용인(龍仁) 사람들이 용문산(龍門山)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동행하면서 말벗이나 하자며 함께 올랐지요.
인터넷에서 '산바람'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이셨는데 그 분의 사모님 전화를 받더니만 "지금 애인하고 용문산 올라가고 있는데 왜 데이트 방해하는거야? 잠깐만 애인 바꿔줄게." 하면서 대뜸 저한테 휴대전화를 넘기셨습니다.
어찌할 줄 몰라 인사만 드리고 끊었는데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ㅋㅋㅋ 정말 재밌는 분이셨습니다.
드디어 용문산 정상인 가섭봉에 도착했습니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이 모두 사라지더군요.
산바람님의 말씀으로는 보안상의 문제로 예전에는 산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2007년에 군부대와 협의하여 40년만에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를 개방한 것이라고 합니다.
500미터 남짓한 산들만 다니다가 오랜만에 천 미터 넘는 곳에 올라봅니다.
용문산은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에 이어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하네요.
용문산의 마스코트인 은행나무를 형상화한 멋진 조각물이 정상에 오른 기쁨을 배가시켜 줍니다.
이렇게 확 트인 조망을 갖고 있는 용문산 정상이지만, 한국전쟁 당시에는 중공군과의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라는데...
남산타워에 사랑의 자물쇠가 셀 수 없을만큼 많이 걸려있는 것처럼 이곳 정상에는 산을 좋아하는 여러 산객들의 흔적이 묶어져 있네요.
주변에 펼쳐진 수많은 봉우리들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나라는 복 받은 땅이란 생각을 하게됩니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살아가는 힘을 주는 산(山)이 많으니까요.
이 분이 바로 산바람님입니다. 혼자서 산행을 다니는 것이 저랑 비슷한 분입니다.
정상까지만 갔다오겠다는 계획을 바꿔 백운봉이라는 또다른 봉우리까지 가 보았습니다.
저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무리한 산행이었겠지만 베테랑을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까 오늘은 운이 아주 좋네요.
하지만 백운봉까지 가는 길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넘으면 또 고개, 다 왔다 싶으면 또 봉우리... 그래도 이 분이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산타기에 불과했을 겁니다. 백운봉은 알지도 못했을 거구요.
백운봉에 도착하니 백두산에서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겨져다 놓은 <통일암>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전망대에서는 양평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안내 지도를 보며 지형을 하나하나 맞추어 보았습니다.
다음에 가볼 곳도 물색을 하면서요. 3월 17일~18일이 양평 고로쇠 축제가 펼쳐진다고 했으니 또 찾아볼 구실이 생겼네요.
백운봉에서 새수골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약수터, 백운봉까지 허겁지겁 올라온 중학생들한테 물병을 주고 약간 목이 말랐는데
다행히도 약수터가 있네요. '적합'판정 받은 걸루요. 백년 약수터 밑에 있어서 약수사인가? 절 이름이 약수사라고 하네요.
웬만하면 경내에 들어가 보려고 했으나 몇 시간동안 계속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또, 양평역까지 걸어가기로 했기에 사진 한 장만 찍고 쭈욱~ 걸어내려 왔습니다.
양평 소방서를 지나 양평역에 도착!! 초행길이었으나 산바람님을 만나 신바람나게 산행을 마쳤습니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용문산에서 천년이 넘도록 이 산을 지켜온 은행나무도 만나고, 좋은 벗을 만나 산행을 할 수 있어서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
글, 사진 김상선 (블로그기자단 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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