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은 우리 역사의 흔적을 찾아갑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인도 아래 떠나는 여행이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사실 아이들은 옛 선조의 흔적을 보는 것보다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것에 더 집중하죠. 그럴 때면 선생님은 문화재가 가진 중요성과 그들의 후손으로서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지 강조하느라 바쁩니다.
<경주 오릉 / 이미지 출처: Fliker @ edvencher>
‘수학여행’ 하면 경주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경주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학창시절 찾아가는 곳이죠. 신라의 수도로서 수많은 문화재가 산재하여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라고 볼 수 있는 곳인데요. 경주 시내를 돌아보면 곳곳에 포진한 커다란 무덤을 보게 됩니다. 무심코 지나가면 자칫 작은 동산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주 보이고 크기도 상당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왕의 무덤이라고 적혀있네요. 당시 왕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줍니다. 역시 신라의 수도라서 그런지 왕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서울엔 왜 왕릉이 보이지 않을까요? 서울은 500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의 수도인데 서울에도 수없이 많은 왕릉이 있어야 하는데 제대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어디 꼭꼭 숨어 있는 건가요? 분명히 있을 건데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일걸 그랬습니다.
왕릉, 제대로 알자!
왕릉(王陵)은 단어 그대로 왕이 묻힌 무덤입니다. 왕릉은 대부분 크고 화려한데요. 생존 당시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죠. 왕실의 위계에 따라,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陵),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각 어버이)의 무덤을 원(園),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 등의 무덤인 묘(墓)로 명칭이 분류됩니다. 현재 온전히 남아있는 서울 근교의 왕릉은 40기, 원은 13기라고 합니다.
왕릉을 만드는 것은 조선시대 국장을 담당하던 삼도감 중 산릉도감에서 맡았습니다. 왕릉 조성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투입되었고, 신성한 장소라 여겨 왕릉 뒤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했다고 하네요. 가끔 아이들이 왕릉 꼭대기에 오르락 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왕릉을 떠나서 우선 그곳은 무덤입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며 예를 중시했기 때문에 고인에 대한 예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겠죠.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조선왕릉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유적입니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세계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할 정도인데요. 5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왕조가 지속된 사례도 드문데다가 역대 왕과 왕비에 대한 왕릉이 모두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가치가 있는 곳이죠. 또한 조선왕릉에는 당시의 세계관, 종교관 및 자연관을 바탕으로 조영 된 공간으로 왕실의 장례 및 제례 등을 조명할 수 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더욱 풍부해집니다.
이제 어느 정도 왕릉에 대한 사전지식도 쌓였고, 서울 어디에 조선왕릉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왕릉, 점점 알면 알수록 매력만점이야~
선릉(宣陵)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철 2호선을 쭉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역 이름이 많이 보이죠. 강남을 지나 쭉 올라가다 보면 선릉역이 보입니다. 이곳에는 조선 제 9대 왕 성종과 그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무덤, ‘선릉’이 있습니다. 이 무덤은 왕과 왕비를 함께 묻은 경우인데요. 이런 무덤을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라고 부릅니다.
<선릉 /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31 ? 이미지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www.aks.ac.kr>
서쪽 언덕에는 성종대왕, 동쪽 언덕에는 정현왕후의 무덤이 각각 위치해 있죠. 두 무덤 가운데에는 홍살문과 정자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성종대왕릉에는 여러 조각들이 새겨졌는데요. 병풍석 면석에는 구름 속 십이지신, 지대석과 만석에는 연꽃, 인석에는 해바라기와 모란이 각각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성종대왕릉은 상석과 난간석 등으로 조성되었답니다. 이와 달리 정현왕후릉은 병풍석과 상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는데요. 이곳 석물들은 조선시대 예법 책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해 장대한 조화를 이룹니다.
연산군묘(燕山君墓)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알려진 조선 10대 왕 연산군의 묘입니다. 거창군부인 신씨의 무덤이 같이 있는데요. 원래 연산군이 생을 마감한 곳은 유배되어 있던 강화였습니다. 장사도 강화에서 지내지다가 1512년 폐비 신씨의 진언으로 이듬해 현재의 연산군묘로 옮겨집니다. 분묘는 서편에 연산군, 동편에 부인의 묘가 쌍분(雙墳)으로 되어 있습니다.
<연산군묘 /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 77 - 이미지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www.aks.ac.kr>
묘역 시설은 대군(大君)의 예우(禮遇)에 맞게 세워졌다고 하네요. 곡장(曲牆,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 묘비(墓碑), 혼유석(魂遊石), 장명등(長明燈), 향로석(香爐石), 문인석(文人石), 제실(祭室) 등이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병풍석(屛風石), 석마(石馬), 석양(石羊), 사초지(莎草地, 오래되거나 허물어진 곳에 떼를 입혀 잘 다듬은 곳)는 설치되지 않았다는 군요. 연산군은 중종의 반역 때 폐왕 되어 쫓겨난 왕이죠. 왕이라는 칭호도 빼앗기고 죽어서도 능이 아닌 묘가 세워졌습니다. 참 불우한 왕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태릉(泰陵)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태릉 선수촌' 때문에 잘 알려진 곳이죠. 태릉엔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이곳은 조선 11대 왕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무덤입니다.
<태릉 / 서울시 노원구 공릉 2동 산 223-19 ? 이미지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www.aks.ac.kr>
당시 중종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안장되어 있었지만 문정왕후는 무덤을 봉은사 곁으로 옮기고 자신도 후일 함께 묻히려 했답니다. 바로 현재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31번지에 위치한 정릉이죠. 하지만 결국 문정왕후는 중종 곁에 묻히지 못하고 현재의 태릉에 안치되었다고 해요. 너무 안타깝네요.
헌릉(獻陵)
헌릉은 조선의 초석을 다졌던 태종과 그의 왕비 원경왕후의 쌍릉입니다. 조선 태조의 건원릉 형식을 따른 것으로 두 능은 12칸의 난간석으로 둘러싸진 형태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봉분 아랫부분은 병풍석이 감싸고 있습니다. 능 앞에는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 각 1쌍, 석호, 석양 각 4쌍, 문인석, 무인석, 석마 각 2쌍의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죠.
<헌릉 /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1헌인릉 내 - 이미지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www.aks.ac.kr>
이런 조성양식은 고려 공민왕릉(현릉)을 기본으로 삼은 배치법이라고 해요. 헌릉을 만나러 가면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조선 제 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가 잠들어 있는 인릉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헌릉과 인릉이 자리한다 하여 헌인릉이라 부르죠.
도심 속 왕릉 여행, 재미있으셨나요?
무심코 지나쳤던 지역에 이렇게나 많은 왕릉이 있었는지, 새삼 역사에 소홀했던 것에 죄송스런 마음이 드네요. 이외에도 서울 근교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시대 왕의 무덤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조선왕릉은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요. 신성한 곳이라고 하여 예전 민간인의 출입을 금하고 관리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비교적 자연이 아름답게 살아있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부담 없는 나들이를 즐기기엔 적격이라는 말이죠. 거기에 천하를 호령했던 왕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공부까지, 정말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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