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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사회복지정보

시각장애인의 만화를 보고 코끝이 찡해졌던 사연

만화, 좋아하세요?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어릴 적엔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친구였죠. 한 번 잡았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문제집 사이에 끼워놓고 몰래 읽다가 엄마한테 호되게 혼난 적도 있었죠. 만화를 하도 빌려다 봤더니 책 대여점 아주머니랑 친해져서 다섯 권 빌리면 한 권 정도는 공짜로 빌려주시기도 했는데, 아... 그 아주머니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요. 암튼 만화는 참 재미있습니다. 만화가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만화가 있어서 사는 게 조금 더 즐거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사소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죠. 눈으로는 그림을 볼 수도 없고, 그림 속 글자를 읽을 수도 없는 사람들. 바로 시각장애인인데요. 그들이 볼 수 있는 만화가 전시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무슨 수로 만화를 볼까?

반가운 마음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찾아간 이곳, 최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만화의 도시로서 부천시의 위상을 더욱 높여준 ‘한국만화박물관’입니다.


부천문화재단은 11월 15일부터 30일까지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행사를 관람하고,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체험해볼 수 있는 ‘배리어 프리 특집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조금 생소한 말이죠? 배리어 프리란 말 그대로 장벽을 없앤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적 장애물이나 심리적 장벽을 없애기 위해서 실시하는 운동 또는 시책을 의미하는 용어이기도 하죠.

부천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배리어 프리 행사는 ‘장애의 벽을 문화로 넘다’라는 부제로 장애인들의 문화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한 고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기획되었는데요. 부천문화재단 산하의 교육박물관과 유럽자기박물관, 수석박물관, 활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장애 체험을 할 수 있고, 판타스틱시네마테크에서는 <도가니>, <블라인드> 등 장애인과 관련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제가 찾아간 이곳, 부천의 한국만화박물관에서는 ‘감각의 확대, 관계의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는 만화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말이 더 반가웠던 이유는 단지 제 지갑이 가벼워서만은 아닙니다. 좋은 취지로 기획된 행사이니만큼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3층으로 올라갑니다.

‘감각의 확대, 관계의 확장’

시각장애인이 눈으로 만화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눈으로 만화를 볼 수 없다는 말은 만화를 볼 수 없다는 말과는 전혀 다릅니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귀로 들을 수 있고, 코로 맡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맛을 볼 수도 있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을 확대합니다. 그럼 더 많은 것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감각의 확대, 관계의 확장 전’은 그러한 생각으로 시작된 전시입니다.


그림 속 악어를 찾아보는 만화, 정은향 작가의 <악어 앙크의 첫사랑>입니다.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된 악어가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데요. 저도 급하게 악어를 찾아봅니다. 초록색 악어 꼬리가 보이네요.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악어 앙크를 어떻게 찾을까요?


정답은? 바로 손으로 만져서입니다. 자갈이 깔린 화분 위로, 울퉁불퉁한 악어 꼬리가 만져집니다. 오호라, 거기 있었구나!

핸드백 걸이가 된 악어 앙크도 눈으로 보고, 손으로도 만져 봅니다. 악어 머리핀이 꽂힌 풍성한 머릿결은 손으로 만지니 더욱 실감 나네요. 사랑에 빠져 소녀를 졸졸졸 쫓아다니는 악어의 모습은 눈으로 보아도 귀엽지만 손으로 만져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이번에는 뜨거운 붕어빵도 먹고 싶고, 일광욕도 하고 싶은 눈사람을 만나볼까요? 신명환 작가의 <눈사람의 꿈>입니다. 눈사람은 솜과 헝겊, 비닐 등으로 표현되어 우리가 경험한, 혹은 상상했던 눈사람의 모습을 비슷하게 재현해 놓았습니다. 모래찜질을 하는 눈사람 아래에는 진짜 모래와 조개들도 붙어 있더군요. 이루어질 수 없어 더 서글픈 눈사람의 꿈, 만화가 가진 기발한 상상력은 손으로 만져서 보는 만화에도 그대로 담겨져 있었습니다.

기획전시실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갑니다. 친숙한 캐릭터인 ‘snow cat’이 ’오감으로 만화와 노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네요. 박스를 뒤집어쓰고, 오렌지에 얼굴도 그려 봅니다. 오징어와 뻥튀기로 가면도 만들어 보구요. 항상 보이기에 우리에게는 일상인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모두 만화의 도구가 되고, 장난감이 됩니다.

또 한 편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나도 만화가’라는 주제로 수업을 들은 후 직접 만든 만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한 작품 앞에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보고 싶은 엄마 얼굴’

아마도 이 만화를 만들면서 수도 없이 어루만져 보았을 엄마의 얼굴을 손으로 기억해냈겠지요. 우리보다 조금 더 바쁘게 움직여야할 그들의 손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도 보이는 자의 오만함이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도 더해서 말이지요.

기획전시실 2관에서는 시각장애인인 아홉 살 ‘딱공’이의 일상을 그린 카툰이 전시되고 있었는데요. 아홉 살 딱공이의 세상을 들여다보며 시각장애인들의 생활과 생각을 이해해보게 했습니다. 딱공이의 이 말, “좀 느릴 수 있지만, 난 나의 방식으로 글을 읽고, 세상을 보고 길을 걸을 수 있으니까요.”

무료입장은 불가능하지만 입장료를 내고 상설전시관을 이용하신다면 4D영화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추락 위험에 놓인 비행기를 멋지게 구해내고,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찌바의 이야기 ‘로봇 찌바’가 상영되고 있는데요. 만화 영화의 모든 상황들이 내레이션으로 설명되어지는 것은 물론 영화 내용에 맞춰 의자가 덜컹거리고, ‘치이익’ 바람이 뿜어져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 아주 짧게만 감상해보실까요?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관계자 분께 여쭈어보니 실제로 박물관에 찾아오는 시각장애인은 거의 없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그동안 문화생활이란 것이 장애인들에게 부술 수 없는 담장이었기 때문은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감히 이해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시각장애인들의 세상살이가 얼마나 고될지 어렴풋이 짐작만 해볼 뿐이죠.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의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둡고, 좁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이죠.

그렇게 관계는 확장됩니다. 하지만 보다 더 넓게, 더 많이 확장되어야 하겠지요. 장애인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의 혜택이 조금 더 많아지고,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더 많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11월 30일까지 이어지는 배리어 프리 행사에 더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 주신다면 좋겠네요.



글?사진 전로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