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애인복지♡사회복지정보

장애인 전용 목욕탕 ‘누리’ 가보니

 

장애인 전용 목욕탕 ‘누리’ 가보니

 

“중증 장애인들의 경우 대부분 수입이 없어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지요.

 

요즘 같은 날에 아침저녁으로 샤워나 목욕하는 것이 당연한데,

우리 같은 경우에는 목욕 한 번 하려면 2~3명이 함께 거들어줘야 해요.

어찌나 미안하던지요.

 

이제는 장애인 전용 목욕탕이 생겨 그런 고민이 싹 사라졌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뜨거운 목욕물에 몸을 담그는 목욕 문화를 선호한다. 개운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온 이모(60·여) 씨도 20년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두 번 씩은 찜질방을 찾을 정도로 마니아였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다리가 불편해지면서는 목욕탕을 가는 일은 연간 행사가 됐다. 전주시는 일반 대중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장애인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9억 5000여 만 원을 들여 전용 목욕탕을 건립했다. 전주시 평화동 꽃밭정이네거리 근처에 위치한 ‘누리’가 바로 그곳이다.

 

‘누리’ 운영 관계자는 “그동안 가정 내 목욕시설을 갖추지 못하거나 신체적 이유로 대중탕 이용에 어려움을 겪었던 중증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목욕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며 “신체적 청결 유지와 목욕욕구를 해소할 수 있도록 중증장애인 전용공간으로 마련됐다”고 소개했다. 이용대상자는 전주시 등록 1~2급 중증장애인만 가능하며, 중증장애인의 목욕을 보조할 보호자, 활동보조인, 요양보호사, 자원봉사자 등은 동행할 수 있다. 

 

<전주시 평화동에 위치한 장애인 전용 목욕탕 ‘누리’의 외관 모습.>

 

경제적인 부담도 줄어들었다. 이용료는 대중탕 1,000원, 가족탕 2,000원이다. 기초 수급자의 경우 대중탕 무료, 가족탕은 1,000원(보호자 1인당 1,000원) 이다. 가족탕 이용은 사전예약 시만 가능하다. 운영요일은 주 4회로 매주 월·화요일은 여성장애인, 수·목요일은 남성장애인만 이용이 가능하며 이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오전 10시 문을 열자마자, 장애인 가족들이 이곳을 찾았다. 대중목욕탕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옆에서 지켜봤다. 이들이 목욕탕 문을 들어서자, 상주하고 있던 사회복지사가 혈압과 혈당을 검사했다. 갑자기 빈혈 등으로 쓰러지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 예방하기 위해서다. 기본적인 건강검진 등으로 수치가 높거나 낮을 경우 다음에 이용하도록 돕고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목욕탕답게 곳곳에 세심한 배려가 물씬 느껴졌다. 모든 이동 공간에는 문턱이 없다. 대신 자동문을 설치해 휠체어를 타고 방문하는 장애인들이 거침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입구에는 6대의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휠체어도 준비돼 있다.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블록은 물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곳곳에 핸드레일도 설치돼 있다. 운영 관계자는 “장애인 전용 목욕탕이 전국적으로 20개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반 대중목욕탕 이용이 불편했던 장애인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몸이 불편해도 자원봉사자들의 목욕 보조를 해주니 다들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

 

목욕탕 내부도 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디자인 돼 있다. 두 곳의 가족탕은 예약을 해야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만원사례다. 샤워기 7개가 마련된 대중탕의 경우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욕탕이 아닌 바닥에 내려앉은 매립형 욕탕이 눈길을 끌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손쉽게 욕탕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는 미끄럼방지 시설과 앉아서도 모든 목욕 도구들이 닿을 수 있도록 시설물을 낮게 배치했다.

 

개장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장애인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곳을 찾은 최모(51·여) 씨는 “집이 워낙 좁아서 화장실에 세면대도 없이 변기만 달랑 있다”며 “다리가 불편해서 혼자서 거동은 물론, 씻는 것도 누가 항상 도와줘야 했다. 그때마다 손길을 내미는 게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특히 목욕탕 한 번 가려면 며칠 전부터 고민할 정도로 큰맘을 먹어야했지만 이제는 휠체어 끌고 혼자 갈 수 있는 목욕탕이 생겨 너무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보호자 박모(72·여) 씨는 “일반 목욕탕에 갈 때마다 장애인 가족이란 이유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심지어 어떤 목욕탕은 입구에서부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이제는 마음 편하게 목욕할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너무 반갑다. 입구에서부터 따뜻하게 맞아줘서 편하다. 내부시설도 너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애인 눈높이에 맞춘 매립형 욕탕과 미끄럼방지 시설이 눈에 띈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어려움도 있다. ‘누리’ 운영 관계자는 “현재 장애인 목욕 도우미가 하루 2명씩 근무하고 있다. 장애인 한 사람을 목욕 시키려면 2~3명의 손길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이용객이 늘어나면 많은 손길이 필요할 텐데, 아직 자원봉사자 모집이 되지 않고 있다. 위탁 운영을 맡고 있는 전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장애인들의 목욕봉사를 지원해줄 자원봉사자를 연중 모집하고 있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한편, 전주시는 장애인전용목욕탕이 단순한 목욕 공간이 아닌 장애인의 휴식공간과 다양한 정보교환의 장소로 활용해,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삶의 활력을 되찾는 공간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전주시 생활복지과 관계자는 “일반인 누구라도 살아가면서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며 “다함께 공존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위민기자 박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