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극성이긴 했지만 요즘 들어 특히나 덤벼대는 것이 보이스피싱이죠. 남의 돈 쉽게 먹겠다는 정신 상태를 사람들이 욕하니까 이걸 이상한 쪽으로 받아들였네요. 이것도 트렌드가 있는지 갈수록 신종 패턴이 양산됩니다. 노력을 하려면 이런 잔머리 굴리는데 말고 다른데 하란 말이다.
요즘 들어 주의할 몇 가지 패턴을 소개합니다.
사례 1 - “경찰선데요 금융 정보 좀” 전화 받았습니다
이건 실제로 제가 전화를 받았네요.
전화 한 통이 걸려와 받았더니 떠듬 떠듬대는 여자 목소리로 “경찰선데요”라고 합니다.
서울지방 경찰서 지능범죄팀 경사인데 명의도용 범죄에 가담자로 내 이름이 있다면서 아무개 씨를 아냐고 합니다.
연변 사투리는 숨길 생각도 없는지 한국인 이름을 중국인 이름마냥 발음합니다.
"아는지 모르는지만 대답하시요우."
"말이나 똑바로 하세요."
고압적으로 나가면 여기서 대접도 섭할 수밖에. 경찰 맞냐고 직접 찾아간다고 했더니 "1층입니다"라고 합니다. "뭔 말인지 못 알아먹겠으니 한국말 잘하는 딴 사람 바꾸라"고 했더니 꼬리 내리고선 대뜸 바꿉니다. 이미 '사'자의 냄새가 피어 오른지 오랩니다.
이번엔 한국말 좀 하는 사람이 받습니다. 경위랍니다. 대규모 명의도용 사건 어쩌구 하더니 니 이름으로 어디 어디 은행 통장이 만들어져 기천만원 출금됐다, 니도 범죄에 가담한 거 맞냐고 묻습니다.
"거기 통장 만든 적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명의도용당해 통장이 만들어졌답니다.
상식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소리 1 - "도용이고 나발이고 내가 은행 직접 안 갔는데 어떻게 통장이 만들어지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은행에서 진짜 통장이 직접 만들어졌답니다. 은행에서는 통장 개설시 본인이 직접 가서 신원조회 안 하면 못 만듭니다. 말이 되냐고 했더니 그제사 은행원도 가담했다 구속됐다고 썰을 푸는데 그런 일을 왜 뉴스에서 난 못 봤지?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은행에 직접 방문해 '명의도용이고 뭐고 본인 아닌 타인에게 통장을 만들어주는 그럴 일은 은행에서 절대 없다'고 재차 확인했습니다. 속지 마시오.
그냥 끊어 버리면 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래도 일단 통화를 이어갔더니 역시나 정해진 수순이 나옵니다.
"그럼 같은 피해 없도록 도와줄 테니 그거 말고 당신 은행 정보 주세요."
"댁이 경찰인지 어찌 믿고 그걸 알려줘요"
그러니 "됐습니다. 왜 경찰을 못 믿으십니까"라고 합니다. 여러분 경찰이 삐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찾아간다고 1층이냐고 물으니 "됐습니다"하고 끊습니다. 여기서 걸어 봐도 전화 안 받습니다.
스마트폰은 이럴 때 좋아요. 서울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 찾은 뒤 민원실에 전화해 담당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정답공개 1 - "지능전담팀은 하는 업무가 다릅니다. 경찰서라고 전화 오면 보이스피싱이니 대응하지 마세요. 정말 도용 사건이 접수되면 우리는 전화할 거 없이 출두명령서를 보냅니다. 그리고 우린 시민들 은행계좌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묻지도 않습니다."
넘어가진 않더라도 이런 전화가 처음이다 보니 바로 끊지는 못하겠더라고요. 나와 상황이 같으시다면 이렇게 대응하세요. "직접 경찰서로 찾아가 이야기하자"라고 하든가 "출두명령서 보내라"라고 말예요.
한 가지 팁이라면 먼저 전화 거는 '잡어'급은 정말로 연변사투리를 쓰더라는 것, 그리고 요새는 내국인도 관여하는지 '상사'급은 한국인처럼 말을 하지만 가만 들으면 상식을 엿바꿔 먹은 소리부터 나열합니다. 어떤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몰개념은 몰개념입니다.
그리고 경찰은 일단 한번 움직이면 강제성을 수반하므로 "그럼 됐습니다" 같은 짓은 안 해요.
사례 2 - 이젠 어린 아이들 통장에까지 뻗치는 마수
지난달 경기도 김포의 어느 초등학교 홈페이지엔 긴급 공지사항이 올라왔습니다. "자녀들의 통장을 보이스피싱 조직이 노린다"는 거였습니다.
공지 문서를 다운받아 확인해 봤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과 범죄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이젠 어린아이들까지 타겟으로 삼는다"는 서두로 시작합니다.
"아이들에게 접근해 통장을 발급하도록 한 뒤 그것을 십수 만 원 쥐어주고 가져간다. '어차피 경찰에 적발되어도 너희는 미성년자니까 처벌 못 해'라는 말을 잊지 않으며."
상식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소리 2 - "괜찮아 너흰 미성년자라 돈 받고 통장 넘겨도 처벌 안 받아."
글은 "그러나 실제로 적발되면 범죄에 가담한 공범으로 간주해 청소년범죄보다 더 큰 처벌대상이 된다"는 경고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범죄란 어린 아이들도 예외로 두지 않는 무양심의 세계임을 새삼 확인하면서 몸서리를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답공개 2 - 이젠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도 꼭 당부해 주셔야 할 때입니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절대 누군가에게 빌려주어선 안 되는 소중한 것임을, 그리고 통장 같은 것을 못된 어른들에게 넘겨선 안 된다고 말이죠.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이름과 명예는 고결한 것이어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 진정한 영재 교육이란 이럴 때 말하는 것이랍니다.
사례 3 - 이젠 대학동창까지 팔아먹냐?
이젠 입으로 낚시질 하는 자들의 몰상식을 보는 것도 지겹습니다만, 이런 일도 있군요. 지난달 경기도는 "텔레마케팅을 사칭한 상술이 기승을 부린다"며 주의를 당부하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신분 사칭=K모씨(여, 20대)는 대학동창이라며 주간경제지 구독을 부탁하는 전화를 받고 동의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동창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 S모씨(남, 30대)는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판매원의 기만상술에 속아 주간시사잡지를 신청했다.
#철회 회피=C모씨(여, 20대)는 영어잡지 구독 기간이 만료된 후 계약연장 권유에 응했다가 철회하려고 연락했지만 업체에서는 담당자가 없다는 등의 핑계로 철회를 회피하고 있다.
- 경기도 경제정책과 제공, 1월 19일 "나 대학동창인데..." 텔레마케팅 사칭 상술 기승 中
#철회 회피=C모씨(여, 20대)는 영어잡지 구독 기간이 만료된 후 계약연장 권유에 응했다가 철회하려고 연락했지만 업체에서는 담당자가 없다는 등의 핑계로 철회를 회피하고 있다.
- 경기도 경제정책과 제공, 1월 19일 "나 대학동창인데..." 텔레마케팅 사칭 상술 기승 中
상식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소리 3 - 상식을 씹어먹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리는군요. 담당자가 전화를 안 받아요?
<공공의 적>에서 강신일 반장님의 명대사가 새록새록 합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전화를 안 받아? 근무이탈이야." 여기서 공무원만 살짝 담당자로 바꿔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공공의 적>에서 강신일 반장님의 명대사가 새록새록 합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전화를 안 받아? 근무이탈이야." 여기서 공무원만 살짝 담당자로 바꿔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언뜻 봐선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보이죠? 의외로 이런 사례가 많아서 경기도소비자정보센터는 다소 충격적인 발표를 합니다. 지난해 텔레마케팅으로 인한 소비자상담건수가 313건에 달했고, 새해벽두인 시점임에도 불구, 올 들어서도 이미 17건이 접수됐다고 말이죠.
정답공개 3 - 센터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화권유 계약 소비자는 계약일로부터 14일 이내 철회가 가능하며 신분사칭 등 기만상술은 허위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하여 유인 또는 거래하거나 계약의 해지를 방해하는 행위로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피해를 당하면 국번 없이 1372번, 소비자상담센터에 연락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권말부록 - 어 혹시? 연말정산 시즌 노린 "도청입니다" 시리즈도 있나요? 확인해 봤더니
때는 바야흐로 13월의 월급이라는 환급금, 연말정산, 소득공제, 현금영수증 등의 키워드가 줄줄이 이어지는 시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소소한 즐거움마저 이용해 먹으려는 악마의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견이 편집회의 중에 나왔습니다. "환급금 드릴 테니 님의 은행 정보 좀"이런 괴상망측한 전화요.
이를 발의해주신 베테랑 주무관은 "도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도·시·구청에 문의해 혹 사례가 있나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있어도, 없어도 혹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시·도민들이 대응할 방안, 그리고 알고 있어야 할 상식을 알려 사전예방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네. 그래서 확인해 봤습니다. 수습보다 더 좋은 최선의 방책은 예방이니까요.
먼저 경기도청 세정과에서 지방세 환급을 총괄담당하는 임상빈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다행히도 "아직은 그런 사례를 당했는데 정말 여기서 전화했느냐와 같은 관련 전화는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런 사례도 접한 일이 없다"는 답변입니다.
"국세, 도세, 시세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도세의 경우는 부동산 등의 취득세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규모가 큰 편이라 대개 분들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거든요."
누가 나서서 환급금 드릴 테니 하고 들이댈 여지가 없다는 거네요. 그럼 그 외의 것은?
"자동차세 등은 우리가 아니고 시에서 담당합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는 또 액수 자체가 적어서..."
아울러 그는 "도청이 먼저 도민에게 전화를 걸어 환급 안내전화를 할 일은 절대 없다"고 확인시켰습니다. 그럼 이번엔 시청 쪽을 확인해볼 차례군요. 31개 시·군 중 수원시청 세정과를 골라 문의해 봤습니다.
담당자는 "'방금 시에서 연말정산 때문에 내 개인정보를 묻던데 정말 거기서 전화를 준 것이 맞느냐'와 같은 피해자의 문의전화가 있었냐"는 말에 "아직까진 그런 사례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시가 직접 시민과 마주하는 부분은 거의 없고 대개가 각 구청과 세무서에서 나눠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렇군요. 누군가가 시청을 자처하며 전화를 걸어온다면 아무리 의심을 해도 지나치지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구청을 확인해 봐야겠군요.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수원시 권선구청의 회계부서로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여기서도 "그런 피해 사례는 접수된 바가 없다"는 답변입니다. 다행입니다.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보이스피싱'에 대해 이들도 민감하긴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관계자가 도리어 '보이스피싱' 여부를 묻는 것에 '정말로 취재를 위해 묻는 게 맞느냐, 하도 흉흉한 세상이라...'하고 의심할 정도였으니까요.
관계자는 "구청에서 환급업무를 담당하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시민 개개인과 마주하지 않고 소속된 직장과 일을 풀어가기에 직접 전화로 환급금이나 연말정산에 관해 뭔가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있다고 해도 비밀번호 같은 것은 절대 물을 이유가 없다"고 확인시켰습니다.
예방접종! - 도청, 그리고 시청과 구청을 하나씩 무작위로 골라 문의한 결과 이들은 한 목소리로 "우리는 연말정산 여부나 환급금을 돌려주겠다 같은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이런 전화가 걸려오면 보이스피싱이구나 하고 의심부터 하셔도 좋습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혹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왔을 시 강경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하시는 것이 행여 발생할 놈들의 소심한 복수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원하게 욕 한바가지나 퍼붓고 끊자는 분들 계시죠? 어느 분은 욕하고 끊으려다가 행동이 느려서 도리어 반격 당하고는 먼저 끊겼대요.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게 마음의 한이 되어 "억울해"를 연발합니다. 허허 느린 것도 죄로다.
반면 그런 에피소드 들으신 분 있을 거예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서 '나 언어학자요'하고 육두문자를 좌라락 읊고 끊었더니 갑자기 집에 피자가 수십 판 날아오더라는 이야기요. 이름과 성명을 매치시켜 전화를 건 것만 보더라도 보이스피싱 하는 자들은 이미 해킹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여러분의 신상명세를 파악하고 있다는 건데요, 상황에 따라선 주민번호에 주소까지 아는 경우도 있답니다.(피자배달 시킬 만한 정도의 정보는 다 있다는 거죠.) 그렇다보니 이를 이용해 욕먹은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로 그 사람 집에다 피자를 수십 판씩 배달 시켰다는 건데, 참 소심한 것도 이 정도면 대단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하긴 한 대여섯 판은 사줘서 어제도 우적우적 오늘도 렌지에 데워 우적우적 내일도 우적우적."
보이스피싱 조심하세요 여러분.
글 사진 권근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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