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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

임신부 음주, 태아에게 총을 겨누는 격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란 이해당사자 간에 초기부터 위험정보를 공유하면서 위험수준을 낮추거나 제거하기 위해 행태변화를 유도하는 양방향 소통과정이다. 임신부 음주관련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에서 태아도 엄연히 이해당사자이지만 의사를 표현할 길이 없으니 소외되고 있을 뿐이다. 이때 엄마가 태아 입장에서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는데 태아에 반하는 행동(예: 음주)을 한다면 비윤리적 대리인이 되는 셈이다. 임신부에게 안전한 음주량은 없다. 임신부의 과도한 음주가 태아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은 직감적으로 누구나 알지만, 한 잔의 술도 태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발암물질과 같은 이치이다. 발암물질에 안심해도 좋은 노출량은 없다. 석면의 경우 단 한 번의 노출로도 암에 걸릴 수 있다. 임신부 음주에는 '낙천적 오류'의 심리가 작동하는 것 같다. '남들'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하지만 설마 그런 일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비합리적 믿음이다. 객관적 위험은 분명하지만 주관적 위험인식이 너무 낮을 때 주로 발생한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임신 중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은 술의 종류와 무관하다는 점이다. 양주든 소주든 맥주든 신의 물방울(와이)이든 모두 치명적일 수 있다. 임신부는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는 것이 옳다.

 

 

이처럼 임신부 음주에 대해 단호하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임신부가 마신 술은 엄마의 혈액으로 흡수돼 태반을 통해 고스란히 태아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엄마는 태아보다 체격이 크고 체액도 많아 술의 영향을 어느 정도 완충할 수 있다. 하지만 태아는 자궁에서 엄마가 주는 영양분에 전적으로 의존한 채 살아가므로 엄마가 술을 권한다면 태아는 아무런 방어수단도 없이 날벼락을 맞는 것과 같게 된다. 아기 젖병에 우유 대신 술을 넣어 입에 물리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임신부가 술을 마셨을 때 가장 흔한 피해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것은 태아가 자신이 원래 지니게 될 지능보다 떨어진 채 태어난다는 점이다. 태아가 흡입한 술의 양에 따라 극단적으로는 저능아가 될 수도 있다. 몸의 내장기관 발달이 더뎌지고 부실해진다. 태아의 두뇌 성장과 기관발달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술로 인해 차단되기 때문이다. 기형아로 태어날 위험도 빼놓을 수 없다. 연구에 따르면 태아는 아주 소량의 술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한다. 단지 육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적 장애도 함께 초래된다.

 

물론 임신부가 마신 술의 양에 따라 그 피해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어떤 태아는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겠지만 러시안룰렛의 피해자가 되는 태아도 있을 수 있다. 임신부 음주와 관련해서 유의해야 할 것은 막연히 '임신부 음주는 해롭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효과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낙천적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고, 전문가가 아니라도 대충 그 관계는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신부 음주는 보호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 속한다. 인과관계에 대한 동의가 이미 돼 있어 주기적으로 임신부 음주의 폐해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보호관리 커뮤니케이션의 경우 전문가가 나서서 '겁주기'를 하기보다는 임신부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유명인이 대중 앞에 나서 음주 동기가 아예 생기지 않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더욱 효과적이다. 신뢰도가 높은 여성 연예인 중에 임신부가 있다면 '임신부 금주 홍보대사'로 임명해 활동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임신부가 '한잔은 괜찮겠지'하고 스스로 합리화하기에 태아는 너무 절박한 처지에 있다. 낭떠러지에 몰린 사람에게 한 발짝만 양보해달라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임신부는 술을 입에 대는 만용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엄마가 일시적인 기분전환을 위해 마신 술로 인해 태어날 아기가 나중에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장애를 일평생 겪게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전상일 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대한보건협회 '건강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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